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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BIG, 최근 삶과 반성. (2014-11-29)

by 둘룽드 2014. 11. 29.


 

어린이 대공원에서의 덩빅


안녕하십니까? 덩빅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못 올린 점에 대해서 반성하며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작성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연구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그곳에 투자하였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삶의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 회사의 흔한 래퍼토리입니다.


월 : 6:30 출근, 6시까지 근무, 이후 야근 혹은 공부하는 시간. 회사내 돌침대에서 숙면

화 : 회사 돌침대에서 자고 일어남, 위와 마찬가지

수 : 6시 퇴근 이후, 집에 가는데 이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쌍둥이를 돌보기.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한 뒤에 다음날 새벽에 출근.

목 : '월' 과 마찬가지.

금 : 6~9시 퇴근 이후 "수"와 마찬가지

토 : 출근 할때도 있고 안할때도 있음.


저녁 시간은 보통 기계 공상에 대한 투자 1시간 정도, 공부 3시간 정도.

공부가 안되는 날은 음악을 들으면서 옥상에서 꿈을 꿨습니다.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는 동료와 사업구상 하면서 평소 경영인들의 루트나 영업 루트 분석 및 회계 루트 정리,자본 관리에 대한 노하우 등을 공책에 정리,

연구별관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금액 분석, 투자 기관 확인,

투자 수단 확인 등 여러가지로 고민하였습니다.


이렇게 잘 활동하다가 그쪽 연구소 생활에 염증이 생겨서 머리도 식힐 겸 퇴사했습니다.

퇴사하고 이직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전 회사 연구소장님께서는 연락을 하십니다. (나쁜쪽으로)

- 나는 아직도 네가 회사를 나온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 도저히 추측이 안된다.

- 지금 페이는 잘받는가? 우리도 검토를 해보겠다.

- 도덕적으로 머리속에 양심이 있는 것이 맞는가?

- 법적으로 2년간 같은 계열, R&D는 근무할 수 없다.


그래서 저 부분에 대한 답변은 이렇게 했습니다.

- 저도 회사를 나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니다.

- 당연히 추측이 안됩니다.

- 제 대학원 학비 및 애기들 학비를 대학원까지 전부 회사에서 내주며 가족 병원비 100% 지급에 상여금 600%~800% 정도, 주식 배당금 지급, 가장 단축해서 설명드립니다.

-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그렇다고 회사에서 2년간 먹고 살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우선이며 본인이 기술적인 데이터를 들고 간 것도 없고

  업계 1위인 이곳에서 굳이 그쪽 기술을 아쉬워 할 것이 없음.


그래도 지금 회사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함.

- 검찰 조사 준비를 하라. (컴퓨터 터는 것, 양심선고 등)

- 컴퓨터에 남은 혹시 모를 자료는 로우포맷을 3번 이상 하라.

- 혹시나 그쪽에서 전화가 오면 이어폰 준비하고 3자 통화를 준비하라.


사실 자료가 없는게 전회사 나온지 4달만에 취업을 다시 한 것인데 정말 우연스럽게 경쟁사가

경력연구원 1명 모집 공고를 낸 것을 봤고 그냥 생각없이 지원했는데 바로 합격.

동종업계 연구경력직이라 6개월간의 감시 .,ㅡ;;를 받은뒤에 정직원이 되는 조건입니다. 

사실 4달동안 여러곳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머리도 식히고 퇴직금으로 이것저것 하고 있던 중이여서

별로 생각이 없다가 한번 다시 도전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우연스럽게 뽑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연구소에서 보통 이렇게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습니다.

(일하는 것은 상당히 복합적입니다. 출장도 가끔씩 가고 실험도 많이 하며 수학적인 이론도

많이 다루게 됩니다. 도면작성이나 시뮬레이션 등은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주조, 용접, 열처리, 금형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4대기술도 배우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이쪽 분야는 말그대로 턱없이 부족하고 이대로는 영원히 못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대선배(40년생)이자, 연구소장이며 나의 우상인 다케시 구쯔하라상의 강의


일본계 회사인데 일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술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구츠하라상이 저에게 하는 말씀은 "현언에 귀담고,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라" , "공부를 많이 하라"

등인데 철학적인 언어가 많이 들어가서 되묻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들) 유머감각이

정말 대단하시고 고령의 연세에도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면 본받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제가 항상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한번 인생을 되짚어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고

그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그 기회가 잘 맞는다면 날개피듯 날라가는 것이고 아니면 기분이 안좋겠죠.


살아간다는 것은 참 묘합니다. 최근에 저는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도 당했었고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멀쩡히 잘 살아있습니다. 가끔 내가 왜 살아가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때도 있지만 어느순간

제 자신을 이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 자신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현재 두아이의 가장이며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순간 "격" 을 중시하게 되고 (언어나 행동의 격)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니 이제는 목디스크 현상과 허리가 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를 많이 이끌어 줬던 것은 맵계에 있었을 때의 그 추억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후회와 반성.. 그리고 미안함.. 아쉬움..

많은 것을 느끼고 과거를 굉장히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더 최선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 천리안 드래프트 동호회부터 맵진, 세디터, 포럼, 맵사이드까지...

아직도 수많은 기억이 교차합니다. 정말로 수많은 기억이 저를 이끌어 갑니다.

아직도 아쉬움에 저를 찾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 한분한분 다 모시고 좋은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3줄요약

- 덩빅은 현재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음.

- 회사를 좋은조건으로 이직해서 적응중임.

- 맵계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때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음. 따뜻했던 그때를.. 특히 맵진, 세디터

  시절.. 개인적으로 맵사이드 시절은 너무 힘들었음. 맵메이커 시절이 정말 따뜻하고 좋았음.


그래서 덩빅은 현재 기계메이커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