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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세상/#재미있는 이야기

최배달, 그 순수한 영혼으로써...

by 둘룽드 2008. 12. 19.

내 머리속에 와닿는 메시지,
언제나 도전의 삶을 보냈던 그의 인생에 존경을 마음을 보내며..

내가 처음 그를 접한건 최근 다른 젊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나도 바람의 파이터라는 영화에서 처음 그를 접했다.
영화에서는 마치 그가 복수의 화신으로써 한순간 강해진 것 처럼 묘사가 되었고
복수의 힘으로 일본을 제패하는 것처럼 나왔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간단한 인물이
아니였으며 굉장히 복잡한 삶과 인생을 보낸 것으로 나와있다.

최영의 사이트(극진공수도의 창시자)에서 그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가져왔다.

1920~1940년대

1923.7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와룡리에서 태어남.
1930.3     만주 유학을 떠남.
1932.2     최승현(부)이 세운 용지초등학교(소학교)에 입학. 택견, 각저등 토유무술을 접함.
1937.4     경성(서울)상경후 중학교에 입학. 당수도(토유)을 접함.
1939.3     군산을 통하여 나가사키로 도일. 야마나시 소년 공항학교 입학.
1944.2     학도병으로 차출(일본태평양전쟁)
1945.11     히바야공원부근에서 미케게이조를 만남. 경호원생활을 시작함. 오오이부도에 위치함.
1946.9     ‘미야모토 무사시’서적을 접함.
1946.10     제1차 입산수도로 身延산에 들어가 가라데의 수업에 정진함.
1947.9     종전초의 전일본가라데도 선수권에 출전해서 우승함.
1948.4     제2차 입산수도로 치바현 키요즈미산에 들어가 20개월의 수업을 실시함.


1950~1955년대

1950.11     치바의 館山에서 소와 대결. 맹우를 쓰러뜨린 것이 47마리, 그 중에 4마리는 즉사.
1951.2     유도, 검도 유단자들과의 대결 후 무사시노 벌판에서 각 무술 당파의 수재자들과의 대결.
1952.6     태극권의 달인 ‘진’노인(홍콩)을 만남. 이후 武에 대한 연구에 정진 할 기회를 맞음.
1952.9     피스톤 호리꾸치와의 만남.
1952.3     하네다공항에서 반아메리카항공으로 처음으로 미국으로 건너감.
1953.4     미국 시카고에서 첫 프로레슬링을 실시함. 미 협회측의 초청으로 엔도 코가찌
(4단)와 전미 32개소에서 가라데를 전파, 레슬링챔피온들과 7회 대결.
1954.1     하와이에서 역도산과 만남.
1954.3     토므라이스와의 대결.
1954.4     100인과의 대결.
1954.5     유리다쯔오와의 대결.
1954.6     미국을 2차 방문. 시카고에서 소와 격투. 手刀로 소의 뿔을 부러뜨리고 맹우를 쓰러뜨림.
1955.5     동경 메지라의 불탄 자리의 野天도장에 오오야마 도장의 간판을 정립.
1955.2     제3차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남미유럽을 돌고, 프로레슬링 선수 뿐아니라,
각계의 격투기와 대결. 위스키병 자르기의 시범이 인기를 얻음.
1955.9     시카고에서 다시 소와 격투


1956~1959년대

1956.4     오카나와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각국을 원정.
1956.6     오오야마 도장, 릿쿄대학 뒤의 오래된 발레 스테이지를 빌려 대산도장을 설립.
1957.6     프랑스의 고유무술인 사바트 달인 ‘보오몬’과의 대결. 무체급레슬러 무이슈킨과의 대결.
1957.9     태국 방문. 무에타이 웨터급 챔피온과의 대결(1라운드 1분 30여초에 승부를 냄)
1957.11     발리섬 방문. 발리무술(카포에라)을 접함.
1958.1     ‘What is KARATE?'출판. 일본에서 최초의 영문으로 된 가라데서가
해외에서 베스트셀러 됨.
1958.3     미국 방문(뉴욕)
1958.4     멕시코에서 맹우와 대결.
1958.8     남미의 토속무술를 접함. 수리검의 달인과의 대결. 쿵후고수와의 대결. 이란 방문,
궁전소속 경호대장과의 대결.
1958.9     FBI본부 초청 지도.
1958.10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지도.
1959.7     제1회 하와이 가라데선수권 대회 개최.


1960년대

1960.3     제2회 하와이 가라데선수권 대회 개최.
1961.11     제1회 북미 오픈토너먼트 대회 개최.
1963.10     대산도장(오오야마도장)에서 ‘이케부쿠로’에 국제 가라데 연맹 회관 총본부건설
공사를 착수함.
1964.1     무에타이 선수와 대산도장의 선수와의 대결. 3전 2승으로 우세하나
타이복싱에 대해 재평가를 내림.
1964.6     ‘천일로써 초심을 만일로써 극’이라 주장하며 극진회관총본부준공.
국제 가라데 연맹 극진회관 정식 발촉
1965.6     가라데의 보급과 지부건립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감.
1966.6     제1회 전미 지부장회의를 LA에서 개최. 북미지구연맹 설립.
1968.7     유럽지구연맹 설립. 암스테르담에서 유럽 제 1회 지부장회의 개최.
1968.8     중동지구연맹 설립. 국왕과 황태자 왕실 지도.
1969.2     남미지구연맹 설립.
1969.4     동남아시아지구연맹 설립.
1969.5     북해도에서 불곰과의 대결 (주최측의 과도한 안전대처로 실패)
1969.9     제1회 오픈 토너멘트 전일 가라데 선수권 대회를 동경체육관에서 개최.
타유파선수 48명 참가함.


1970년대

1970.4     제2회 유럽 지부장회의를 런던에서 개최.
1970.9     제2회 미 지부장회의가 LA에서 개최.
1971.6     미 합중국 본부도장을 뉴욕. 맨하탄에 개설. 뉴욕시장 참석.
1971     오하라 사키 作 가라데 바보 일대 소년 매거진에 연재 개시.
1975.11     제1회 세계대회(제 7회 일본대회를 겸함)를 동경체육관에서 개최.
세계 36개국으로부터 128명의 선수가 출장.
1976.5     다큐멘터리 영화 "지상 최강의 가라데" 개봉.
1978.11     요르단의 ‘모하멧’ 황태자 전하가 제10회 오픈 토너멘트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대회
관전을 위해 방일.
1978.12     말레이시아, 싱가폴 초청으로 가라데 지도.
1979.7     동경 麻布의 소련 대사관에서의 대연무회를 열었다.
1979.11     요르단 왕실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음. 제2회 오픈토너멘트 전 세계 가라데 선수권
대회 개최.
     
     
1980년대

1980.3     이스라엘에서 제 6회 극진가라데 선수권대회 개최
1980.4     호주 선수권대회
1981.3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미 극진가라데 대회 개최
1981.5     남미의 케이프타운대학 체육관에서 남미극진오픈토너멘트가 열림
1981.6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시에서 제 1회 동남아시아 선수권대회가 열림
1981.9     제1회 남미지구 선수권대회가 브라질에서 열림
1981.11     네팔 황태자 ‘디레시도라’ 전하가 방일. 연무회가 열림. 전 파키스탄 선수권 대회
1982.6     전 호주 선수권대회
1983.2     제2회 남미선수권대회
1983.6     제1회 헝가리선수권대회가 열림. 공산권에서의 첫 극진대회
1984.1     브라질 정부로부터 문화공로상을 수여받음.
1987.11     제3회 오픈 토너멘트 전 세계 가라데 선수권대회 개최.
76개국, 207명의 선수가 출장.
결승전에서 엔드훅을 꺽고 마쓰이 쇼케이(문장규) 우승.
1989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전 소련 동양격투기센터로부터 극진회관 소련지부를
인가하는 공문서가 발행됨.


1990년대

1990.5     가라데바이블’ 초필시작.
1991.11     제5회 오픈 토너멘트 세계대회를 개최함. ‘마쓰다’를 결승전에서 꺽고
‘미도리 겐지’ 우승.
1994.4.26     성누가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


우리나라 사람은 인생 자체가 보통 치혈합니다. 어떠한 외국인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혈하게 살죠. 그래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엄청난 위력이 발산되며 세계 최고국가들의
위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너무 '돈돈돈'만 외쳐 르네상스의 시대를 상실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천재들이 죽게 되었으며 문화의 시대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뭐 이런 시대에서는 이러저러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다들 각기 다른 노력으로
성공하겠지요. 예술인들은 배를 곪겠지만.